내가 읽은 책

아름다운 마무리(법정)

최고선수 2010. 1. 7. 11:24

아름다운 마무리(법정)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쇼의 묘비명 -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책다운 책 - 한길사에서 펴낸 리영희 씨의 <대화>


  부처님 계신 곳이 어디인가

  지금 그대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

원각도장하처 현금생사즉시(圓覺道場何處 現今生死卽是)


  종교만이 아니라 우리들 삶도 바로 지금 이 자리를 떠나서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책은 가려서 읽어야 한다. 읽고 나서 남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책은 좋은 책이다. 읽을 책도 많은데 시시한 책에 시간과 기운을 빼앗기는 것은 인생의 낭비다. 사실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다.

  그럼 어떤 책이 좋은 책(良書)인가? 베스트셀러에 속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때 상업주의의 바람일 수도 있다. 좋은 책은 세월이 결정한다.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책, 잠든 내 영혼을 불러일으켜 삶의 의미와 기쁨을 안겨 주는 그런 책은 그 수명이 길다. 수많은 세월을 거쳐 지금도 책으로서 살아 숨 쉬는 동서양의 고전들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이 기회에 한 가지 권하고 싶은 말은 어떤 종교의 경전이든지 경전은 소래 내어 읽어야 한다. 그저 눈으로 스치지만 말고 소리 내어 읽을 때 그 울림에 신비한 기운이 스며 있어 그 경전을 말한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책을 가까이 하면서도 그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아무리 좋은 책일지라도 거기에 얽매이면 자신의 눈을 잃는다. 책을 많이 읽었으면서 콕 막힌 사람들이 더러 있다. 책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읽을 수 있을 때 열린 세상도 함께 읽을 수 있다. 책에 읽히지 않고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책에는 분명히 길이 있다.


 홀로 걸으라, 그대 가장 행복한 이여- 세상에 책은 돌자갈처럼 흔하다. 그 돌자갈 속에서 보석을 찾아야 한다. 그 보석을 만나야 자신을 보다 깊게 만날 수 있다.


  불타 석가모니는 <숫타니파타>에서 ‘천한 사람’에 대해 이와 같이 말한다.

  “얼마 안 되는 물건을 탐내어 사람을 죽이고 그 물건을 약탈하는 사람.

  증인으로 불려 나갔을 때 자신의 이익이나 남을 위해서 거짓으로 증언하는 사람.

  가진 재산이 넉넉하면서도 늙고 병든 부모를 섬기지 않는 사람.

  상대가 이익 되는 일을 물었을 때, 불리하게 가르쳐 주거나 숨긴 일을 발설하는 사람.

  남의 집에 갔을 때는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면서 그쪽에서 손님으로 왔을 때 예의로써 보답하지 않는 사람.

  사실은 성자(깨달은 사람)도 아니면서 성자라고 자칭하는 사람, 그는 전 우주의 도둑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가장 천한 사람이다.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귀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그 행위에 의해서 천한 사람도 되고 귀한 사람도 되는 것이다.“


                     임종게와 사리


  한 생애를 막음하는 죽음은 엄숙하다. 저마다 홀로 맞이하는 죽음이므로 타인의 죽음을 모방하거나 흉내낼 수 없다. 그만의 죽음이기 때문에 그만큼 엄숙하다.

  13세기 송나라 조원(祖元)스님은 이런 임종게를 남겼다.

 

  부처니 중생이니 모두 다 헛것

  실상을 찾는다면 눈에 든 티끌

  내 사리 천지를 뒤덮었으니

  식은 잴랑 아예 뒤지지 말라


  육조 스님의 제자인 남양의 혜충 국사가 죽으려고 할 때 마지막 유언을 듣고 싶어 하는 제자들을 꾸짖으면서 “내가 지금까지 너희들에게 말해 온 것이 모두 내 유언이다”라고 했다.

  또 어떤 스님은 제자들이 임종게를 청하자, 임종게가 없으면 죽지 못한단 말이냐고 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해 온 말이 곧 내 임종게다”라고 했다.


             책에 읽히지 말라

  지나온 자취를 되돌아보니, 책 읽는 즐거움이 없었다면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싶다. ‘책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는데 독서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교훈이다. 학교 교육도 따지고 보면 책 읽는 훈련이다. 책을 읽으면서 눈이 열리고 귀가 트인다. 그 또래가 알아야 할 보편적인 지식과 교양을 익히면서 인간이 성장하고 또한 형성된다.

  따라서 인간 형성의 길에 도움이 되지 않는 독서(지식이나 정보)는 더 물을 것도 없이 사람에게 해롭다.

  옛 스승의 가름침에 ‘심불반조 간경무익(心不返照 看經無益)’이란 말이 있다. 경전을 독송하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으로 돌이켜 봄이 없다면 아무리 경전을 많이 읽더라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자칫 빠져들기 쉬운 것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에 읽히는 경우이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책이 나를 읽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객이 뒤바뀌어 책을 읽는 의미가 전혀 없다.

  이런 때는 선뜻 책장을 덮고 일어서야 한다. 밖에 나가 맑은 바람을 쏘이면서 피로해진 눈을 쉬게 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기분을 바꾸어야 한다. 내가 책에서 벗어나야 하고 또한 책이 나를 떠나야 한다. 표현을 달리하자면,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비로소 책을 제대로 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선가(禪家)에서 불립문자(不立文字)를 내세우는 것도 아예 책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책을 대하되 그 책에 얽매이지 말고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지혜는 문자가 아니지만 문자로써 지혜를 드러낸다. 이렇게 되어야 아직 활자화되지 않은 여백(餘白)의 글까지도 읽을 수 있다.

 

    일몰의 모습도 일출 못지않게 아름답고 성스럽기까지 하다.

    내 인생도 이렇게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