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향기롭게(법정)
맑고 향기롭게(법정)
한때의 기쁨과 축복의 체험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 분발하기 바랍니다. 더 멀리 내다보려면 다시 한층 높이 올라가야 합니다. 될 수 있는 한, 말 적게 하고, 잠 덜 자고, 음식 덜 먹는 것이 수도 생활을 기쁨과 축복의 길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진정한 수행은 새로운 이해로 나아가는 자아 교육의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들의 삶은 보다 풍요로워지고 더 이상 방황하거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게 됩니다. 진실한 수행은 스스로 발견해 나가는 내밀한 행위이며 눈뜸입니다.
명상이란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과 다른 무엇이 아니라 깨어 있는 삶의 한 부분이다. 묵묵히 쓸고 닦는 그 일이, 시장에서 무심히 사고파는 그 행위가, 또한 맑은 정신으로 차분하게 차를 모는 그 운전이 바로 명상으로 이어진다.
어떤 직종에서 무슨 일에 종사하건 간에 자신이 하는 일을 낱낱이 지켜보고 자신의 역할을 자각하는 것이 곧 명상이다.
명상은 창문을 열어 놓았을 때 들어오는 산들바람이다. 그런데 일부러 창문을 열고 억지로 불러들이려 하면 그 산들바람은 들어오지 않는다.
적게 가질수록 마음이 덜 흩어진다. 그리고 적게 가질수록 귀하고 소중한 줄을 알게 된다. 귀하고 소중한 줄 모르는 사람은 알맹이 없는 빈 꺼풀만의 인생을 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자기 분수에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부유한 것처럼 보이지만 안으로는 가난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남 보기에 가난한 듯하지만 실상은 어디에도 걸릴 게 없는 부유한 사람인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번쯤 생각해 볼 말씀읻.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다른 의미이다.
단순한 삶을 이루려면 자기 억제와 자기 질서 아래서 보지 않아도 될 것은 보지 말고, 읽지 않아도 좋을 것은 읽지 말며, 듣지 않아도 될 소리는 듣지 말고, 먹지 않아도 될 음식은 먹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적게 보고, 적게 읽고, 적게 듣고, 적게 먹을수록 좋다. 그래야 인간이 덜 닳아지고 내 인생의 뜰이 덜 시든다. 보다 적은 것은 보다 풍요한 것이니까.
행복의 조건은 결코 그거나 많거나 거창한데 있지 않다. 그것은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한 데 있다. 조그마한 일을 가지고도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선가에 한고추(閑古錐)란 용어가 있는데, 닳아서 무딘 송곳을 가리킨 말이다. 수행자의 경지가 원숙해져서 서슬이 밖에 드러나지 않음을 뜻한다. 그러니 서슬이 푸른 것은 미숙함을 드러냄이다.
수행자에게 중요한 것은 학식이나 지식이 아니라 지혜롭고 자비스런 행동이다. 종교란 회색의 이론이 아니라 살아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자만을 가져오지만 사랑은 덕성을 길러준다.
임종을 앞둔 늙은 스승이 마지막 가르침을 주기 위해 제자를 불렀다. 스승은 자신의 입을 벌려 제자에게 보여 주며 물었다.
"내 입 안에 무엇이 보이느냐?'
"혀가 보입니다."
"이는 보이지 않느냐?'
"스승님의 치아는 다 빠지고 하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 이는 다 빠지고 없는데 혀는 남아 있는 이유를 알겠는?"
"이는 단단하기 때문에 빠져 버리고 혀는 부드러운 덕분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는 것. 이것이 세상 사는 지혜의 전부이니라. 이제 더 이상 너에게 가르쳐 줄 것이 없구나. 명심하거라."
법정스님의 책이 절판된다고 하니 천정부지로 값이 치솟는다고 합니다. 무소유를 강조한 책을 소유하기 위해서이다. 이전에는 찾지 않던 책들이 잠시잠깐의 호기심으로 구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렇게라도 책을 구하고 싶어한다는 마음이 가상하여 그 정신을 높이 사야할 것기도 합니다.
맑고 향기로운 재단을 만들어 80퍼센트 정도를 법정의 도움으로 누구도 알 수 없게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왔다는 스님의 향기로운 마음에 전 국민이 흠뻑 취해서일까요?
책이 내 손에 들어온지가 반 년 가까이 되었음에도 이제야 이 산문집을 다 읽은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이고 작아지는 것 같아서 읽기를 미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벌써 매발톱의 새싹이 소복이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