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의 인연
작년 언젠가 사서 읽은 책인데 친정어머니를 빌려드렸더니 엊그제 반납하신다.
다시 읽어보니 처음 본 것처럼 생소하니 다시 읽으면 뭐하겠나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 정도로 까맣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일간지에서 얼핏 보니 작가가 암과 투병했다고 하더니 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을 것도 같다.
나는 거의 매일 아침 간밤에 마신 술이 덜 깨인 상태로 성경책을 읽고 또 읽었다. 나는 6-7년 전의 그 고독했던 겨울처럼 성경책의 어느 한 구절이 내 가슴에 영감을 불러일으켜서 이 더러운 마음의 문을 열게 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마음의 방 안에 쌓인 온갖 먼지와 쓰레기들을 치워내기 위해서는 우선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고 방문을 활짝 활짝 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수많은 옳은 말, 성스러운 구절에도 불구하고 눈을 그 진리의 말을 분명히 쫓아 읽고 있었지만 마음은 그 구절에 가 닿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바닷가에 물밀어오는 해안의 기슭만을 핥고 있는 것처럼 그 좋은 말들, 진리의 말들은 마음의 기슭에만 파도치고 있을 뿐 심령의 깊은 골짜기에는 와닿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알았다. 내가 그 좋은 말들과 만나기 위해서는 우선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스스로 그 더러운 쓰레기들을 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러하지 않고 지금의 마음을 비우지않고 예수께 매달리고 구원을 바란다는 것은 더러운 구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 자신의 마음을 비우기 전에 그를 찬양하고 설교하고 진리를 부르짖는다는 ㄴ것은 더러운 이기주의라는 것을.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으면 성경책의 그 많은 말들은 헌법에 나오는 법문의 조항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
시련을 견디어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시련을 이겨낸 사람은 생명의 월계관을 받을 것입니다. ......
사랑하는 일은 서로 닮아가는 것이다. 그 것이 나병이라 할지라도.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병을 앓고 있는지 모른다.
사랑은 모든 병을 이기는 힘이 아니라, 어떤 병도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위안이다. ......
나는 직업을 가진 모든 사람이 훌륭하고 거룩하다고 생각한다.
그 많은 직업 중에서 나는 특히 두 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을 더 존경한다. 그 하나는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선생님이고, 또 하나는 종교의 사제직을 맡고 있는 성직자들이다.
그들이 오염되었다. 타락했다 하고 비판을 하지만 나는 그들이 우리의 영혼을 대신 아파하고, 고통스러워 하고, 우리의 죄를 함께 빌어 용서를 바라는 그 모습에 늘 감사해하고 고마워하고있다.
우리가 간혹 어떤 목사님들더러 타락했다 하는 것은 그들에게서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와 다름없는 탐욕과 이기심과 욕망을 가졌음을 발견해내려는 교묘한 복수심 때문일 것이다. 스님이나 목사님이나 신부님이 어째서 우리와 다른 사람일 것인가. 나는 그들도 우리와 다름없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
지금쯤 덕진연못에는 더 흐드러지게 연꽃이 피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