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화성
조용헌의 < 동양학 강의>
인사편 1과 천문편 2로 나누어진 책인데 예전에 보았던 <소설>처럼 두쪽이 넘지 않는 간단간단한 이야기로 자연과 천문, 종교와 운명 등의 단원과 작은 제목으로 이루어져서 시간나는대로 읽기가 참 편하고 느낌을 주는 내용들이다.
청개화성(聽開花聲)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향을 가진 꽃이 있다. 이른 봄에 달빛에서 맡는 매화의 암향, 4~5월에 피는 라일락 향, 한여름에는 연향, 그리고 11월 초에 피는 만리향이다. 이름하여 '4대향'이다. 복더위에는 연향을 맡아야만 세월을 헛되게 보내지 않은(?) 인생이 된다.
복날에 연향을 맡을 만한 연지는 어디인가? 역사가 오래된 연지를 꼽는다면 전주의 '덕진연못'이다. 전주는 그 지세가 '남폐북방'으로 되어 있다. '임실, 남원으로 가는 남쪽은 높은 산으로 닫혀 있고, 북쪽은 열려 있다'는 뜻이다. 보통 북쪽이 산으로 막혀 있고 남쪽은 열려 있는 경우가 많은데 전주는 그 반대다. 남폐북방은 결과적으로 북쪽의 지세가 허 하다는 것이 단점이다. 북쪽의 지세를 어떻게 보강할 것인가. 전주 북쪽에는 건지산과 가련산이라는 100여 미터 정도의 낮은 산이 있다. 그런데 이 두 산도 지맥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각기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북쪽을 비보하는 방법은 건지산과 가련산의 사이를 제방을 쌓아서 연결하는 방법이었다. 18세기 후반 전라감사 이서구 재임 시절에 이 연결 공사가 진행되었다고 전해진다. 연결 제방을 쌓고 나니 자연스럽게 흘러가던 물이 고이면서 인공적으로 연못이 형성되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덕진연못이다.
7월 하순에서 8월 중순까지 덕진연못은 연꽃이 만발한다. 전주의 황산거사는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이 연향을 몽땅 즐기낟. 오후 6~7시 무렵에 연못 주위를 한 시간 정도 돌면서 연향을 맡으면 정신이 맑아진다. 이 연향이 코로 들어가 아랫배로 내려가면, 머리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개운하면서 훈훈해지는 것 같다. 황산거사에 의하면, 여름에 향으로 보기(補氣)하는 데에는 '연향'만 한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옛 선인들은 저녁뿐만 아니라 새벽녘에도 연꽃을 즐겼다. '청개화성'이 그것이다. 연꽃은 새벽에 그 꽃이 핀다. 이때 미세한 소리가 난다. 새벽에 연지에 배를 띄우고 들어가 그 연꽃이 피는 소리를 듣는 풍류를 가리켜 청개화성이라고 한다.
이제는 내년을 기다려 봐야할 때이다, 놓지지 않고 꼭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