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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 부모

최고선수 2005. 9. 2. 18:49

조선일보 9월 2일자 신문의 '李圭泰코너'에서 옮겨본다.

 

 

'헬리콥터 부모'

 

  내 자녀를 위해 학부모가 헬리콥터처럼 학교주변을 맴돌며 사사건건 학교측에 통보 간섭하는 '헬리콥터 부모'들의 극성을 받아오던 미국 학교들에서 이를 단절하는 쪽으로 전환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헬리콥터 부모는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아들딸 하나만 낳는 소자(少子)현상의 정착이 별나게 빠른 한국을 비롯 그것을 정책으로 정해온 중국에서도 이 헬리콥터 사고는 빈발해왔다. 중국에서는 개구쟁이 짓하는 아이를 책으로 머리를 쳤다는 것만으로 학보모가 교실로 달려가 칠판에 글을 쓰고 있는 선생을 곡괭이로 쳐 죽이는 사건이 생기는가 하면 한국에서는 수업 중 값비싼 팽이를 돌리는 아이의 팽이를 압수한 것을 선생이 제 아들 주려고 빼앗았다 하여 학부모들이 단체행동을 벌였던 일 등 헬리콥터 사건들을 기억할 것이다. 소자화(少子化)는 과보호농도를 진하게 하고 살림살이의 전자화로 여가 시간이 급증, 안하무인인 소황제(小皇帝)가 다니는 학교주변은 헬리콥터 소음이 가중될 수 밖에 없었다.

 

  옛날 영남 지방의 서당 문 기둥에는 부젓가락을 걸어놓는 관행이 있었다. 요즈음 학교들에 헬리콥터가 감도는 것과 대조되어 상징적 의미가 있는 부젓가락이다. '청구영언(靑丘永言)이란 옛 문헌에 그 부젓가락의 내력을 암시해주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합천(陜川)현감으로 부임한 한 벼슬아치의 외아들 놈이 과보호로 자라 위아래 알아보지 않는 개망나니로 어떤 내로라하는 스승도 다스릴 수가 없었다. 당시 해인사에 엄한 사승(寺僧)이 있다 하여 현감이 찾아가 그 아이의 생살(生殺)권을 맡긴다는 증서와 더불어 아이를 맡겼다. 이놈 노승에게 발길질하고 법당 성소에 오줌을 누는 등 횡포가 심할 때마다 스님을 풀어 잡아다 기둥에 묶고 부젓가락을 벌겋게 달구어 허벅지를 지지곤 했다. 원한을 품고 그 한풀이를 원동력으로 공부에 매진, 대과에 오르고 해인사가 관할인 경상 감사에까지 올랐다. 크게 뉘우친 감사는 관내 서당에 부젓가락을 걸어두어 경각심을 불어넣도록 한 것이 서당 부젓가락의 내력이라는 설이 잇다. 미국 학교 둘레에서 헬리콥터 소음이 잠잠해지듯 한국 학교들의 문기둥에 부젓가락 걸리는 것을 보고 싶은 작금이다.

 

 

  맹목적인 사랑보다는 무엇이 진정 자식을 위하는 일인지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너무 의타심이 많은, 태만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되어가고 있지는 않는지, 혹은 몇십년 뒤에 이들이 살아가야 할 사회에서 어떤 어려움도 이겨나갈 수 있는 지혜와 인내를 길러주었는지 돌아보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