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객사
풍남문에서 조금만 북쪽으로 가면 도청이 있었고(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김) 또 조금 더 가면 객사가 있다.
어렸을 적 객사 옆에 사는 친구네 집으로 놀러갔던 기억과, 객사라는 뜻만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지, 자세한 내용을 모르고 미진한 점이 많아서 일단 사진을 한 장 찍고 객사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는 전주 시청 홈페이지를 찾아보았더니 아래와 같이 나와 있었다. 하지만 풍패지관이라는 현판을 쓴 사람과 그에 얽힌 이야기는 '조용헌 살롱'에서 본 것 같기는 한데 다 잊어버렸다. 그래서 기억의 창고로 지금의 블로그를 이용한다면 너무 이기적인 생각일까?
처음에는 그저 일기쓰는 심정으로 누가 볼 것은 생각도 안하고 시작한 칼럼방에서 어느 순간 공개하는 방이 되어버리고 이제는 이 방을 찾아주시는 분도 계시니 그저 안 쓰면 그만이지만 무언가 그만두기는 서운하고 미안하고 인터넷 상에서나마 정보를 나누는 재미도 쏠쏠한 것 같아 무언가 끄적이다보니 글쓰는 재주도 사진을 찍는 기술도 없는 사람이 쓰레기 창고처럼 이것저것 잡다하게 쌓아놓은 이 공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지금도 마주 앉아 있다.
이렇게 적다보면 부족한 점이 더욱 눈에 들어와서 '향토지라도 더 읽어보고 연구해야 하지않나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을 보면 역시 전혀 소득이 없진 않은 것도 같다.
<전주객사는 보물 풍남문에서와 마찬가지로 전라감영(도청)의 권위와 명예를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뜻을 지닌 보물이다. 현재의 위치는 전주시 고사동 충경로 북편에 자리하고 있는데 남쪽을 연하고 있다.
광대한 대지, 웅장한 건축물 전주객사의 원래는 전주부성 안에서 가장 으뜸인 감영, 현 도청구내의 북쪽에 있는 광대한 대지에 주관과 그 좌우에 양익헌을 가진 웅장한 건축물이었다. 그러던 것이 1914년 북문(지금의 시청앞 팔달로변 5거리)에서 남문에 이르는 관통도로의 확장공사로 좌측의 동익이 철거되고 현재는 주관과 서익만 남게 되었다. 해방이 되면서 서쪽광장이 경찰학교로 쓰였으며 서익 건물 바짝 밑까지는 사유지로 매각되어 고층건물이 들어서는 촌극을 빚기도 하였다. 북쪽의 넓은 공터도 주관 처마밑까지 개인에게 매각되어 체신청 건물이 세워지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였으며 이 통에 추녀끝을 잘라내야 하는 등 보물의 원형훼손이라는 큰 무지를 저지르기도 하였다.
조선왕조의 발현지로서의 풍패지관 현재는 주관과 서익헌만 남아있고 주관 정면에는 풍패지관이라는 유려한 초서체의 현판이 걸려 있다. 여기서 풍패란 한고조의 고향지명으로 왕조의 본향을 지칭하는 것으로 전주가 바로 이조의 발상지로서의 그 높임을 우러른다는 뜻에서 전주객사의 본관을 '풍패지관'이라 하였다.
객사에는 이밖에도 적지않은 건물들이 부속건물들로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며 풍아한 조원시설도 있었으나 지금은 자취도 찾을 수 없고 본관인 주관만 건재해 있을 뿐이다. 전주박물관 소장 전주부성도를 보면 후원에 조산이 있고 정면에는 내삼문, 중삼문, 외삼문이 겹쳐 세워져 있었으며 내삼문을 이어 담장을 두르고 내삼문 동쪽에는 맹청, 서쪽에는 무신사가 각각 자리해 있었다. 담장을 따라 서측에는 책판고 등이 있었던 것으로 부성도가 명시하고 있으며 담장밖의 서측에는 아영청이 각각 있었다.
또 후원에는 조산을 둘러 조경을 하고 중앙에 진남루 그 동서에 매월당 청연당 등이 있었다. 객사는 본디 객관이라고도 하는데 여러 고을마다 거의 관건물로 설치하였으며 그 규모는 대략 중앙에 주건물을 두고 그 좌우 동서에 양익헌을 달았다. 대개 양익의 지붕은 주관의 높이보다 낮았다 >
국어사전에서 찾은 객사 : 1. 객지에서 묵는 집. 객관. 2. 고려·조선 시대에, 궐패를 모시어 두고, 왕명으로 내려오는 벼슬아치를 묵게 하던 집. | ||
전주 객사 (동서로)길 건너에서 찍음. 이 길을 낼 때 시민들이 풍수지리상 좋지않다하여 엄청나게 반대했던 기억만 있다.
벼가 꽃이 핀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이삭이 나오면서 흰 꽃이
붙어있더군요.
모시 받침이라도 하여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데 그냥
벽에다 걸어놓고 스스로 대견하여.
다른 논에는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이삭이 안 나온다 했더니 이제야 겨우 나왔는데 이제는 나방이 논에 가득합니다. 이제부터는 사진 안 찍어야지. 앞으로는 절대 묻지마시길. 어휴~ 주인 잘못 만난 벼들 미안하다.
그것도 농사라고 지어보니 정말 제 때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주일만 늦어도 이리 더디니, 젊어서 고생하여 일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몇 배 힘들고 수확하기도 힘들다는 것을. 또한 제대로 가꾸지 못하면 수확할 것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가을의 풍성한 수확은 봄부터 여름내 땀흘린 부지런한 자의 몫이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