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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중양, 양중음

최고선수 2005. 9. 13. 22:35

조선일보 2005.3.13일  화요일  '조용헌 살롱'<159>에서

 

 

玄俊鎬와 湖南銀行(1)

 

  평생동안 '주역'을 공부하셨던 원로 선생님에게 "주역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하고 질문을 드렸던 적이 있다. 그 대답은 "음중양(陰中陽)이고 양중음(陽中陰)이네!"였다. '음속에 양이 있고, 양 속에 음이 있다'는 말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세계와 인간의 실상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일관된 원리'를 기대했던 사람에게 '양중음 음중양'이라고 하는 이중률(二重律)은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핵심(?)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삶은 모순된 부분이 많다. 특히나 조선이 망하고 일제 36년이라고 하는 혼란기를 살았던 인생들의 행적이 그렇다. 1920년 호남은행을 창립했던 무송(撫松) 현준호(玄俊鎬.1889~1950). 그는 인촌 김성수와 함께 호남을 대표하던 양대 부자였다. 그는 이번에 발표된 친일인사 명단에 포함되었다. 1930~1935년까지 총독의 자문기구인 중추원의 참의를 지냈기 때문이다.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그는 분명 '친일파'이지만, 한 꺼풀 벗긴 상태에서 그의 행적을 추적해 보면 '항일파'였던 면이 드러난다.

  그가 설립한 호남은행의 운영과정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호남은행의 경영원칙 중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었다. 첫째 은행에서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둘째 일본인 직원을 채용하지 않는다. 셋째 일본인 및 일본관계 단체에 일절 융자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현준호 본인은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항이 문제가 되어 호남은행은 무려 50일이라는 장시간 동안 총독부 이재국의 특별감사를 받았고, 마침내 1942년 동일은행에 강제합병을 당해야만 했다. 호남은행의 상무취체역과 본점 지배인을 일본인으로 교체하면 강제합병을 면할 수 있다는협상안이 들어왔지만, 현준호는 끝내 이 협상안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중추원 참의를 지냈던 경력에 걸맞지 않은 행동이었다. 흑자가 나던 은행을 강제로 뺏긴 셈이다. 이 과정이 근래에 조흥은행에서 발간한 '조흥은행 105년사'에 소상하게 나와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현대그룹의 현정은 회장이 바로 현준호의 손녀딸이고, 당시 호남은행의 실무 책임자로서 경남 산청 출신이었던 김신석(金信錫)의 외손녀딸인 삼성의 홍라희 관장이란 점이다.

 

 

  어쩌면 이리도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핵심을 콕 찍어, 현대와 과거를 비교하여 해박한 지식으로, 알기쉽고 가슴에 와 닿는 글을 글자수까지 맞추어 가며 길지도 짧지도 않게 이야기를 술술 풀어갈 수 있는지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메모나 스크랩이라고는 해 본적이 없는 내가 신문을 오려둘까 하다가 그것도 게을러서 못하고, 맘에 드는 글들을 한 번 읽고 말기에는 너무 아까워 이렇게 저장해 두고자 하는 마음에 적어본다.  

 

  내가 이십 전후에 아버지께서는 주역을 자주 읽으시고 외우시고 하시는 것을 본 적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주역서문이 있길래 외워본 적이 있었다. 몇년 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대화 상대가 없어졌다는 것이 항상 마음 아팠었는데, 마지막 부분이 쉬운 글자로만 되어 있어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易은 變易也오 隨時變易이 終道也라'

  알듯하다가도 모르겠지만 수시로 변하는 것이 주역의 마지막 도라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모양이다.

 

  '음중양 양중음' 온전한 음이나 온전한 양은 없는 것이라는 말로 해석하고 싶다. 그렇다면 완전한 선인도 완전한 악인도 없을 것이다. 어찌보면 오십보 백보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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