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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자산

최고선수 2005. 5. 1. 11:35

   수도전주에서 동쪽으로는 기린봉이 있다.

  군경묘지를 따라 올라가면 중바위(승암산)가 나오고 그아래 승암사가 있었다.

  그리고 다른 몇 개의 조그만 절들도 나름대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어머니, 할머니들이 조그마한 보따리에 쌀이며 초를 들고 지고 올라가서 정성스레 기도하고 한 해의 신 물어보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상의도 하고,모모하는 사모님들도 정성을 드리기 위해 기다리며 이야기 꽃도 피우고 서로 안부인사도 묻고 하는 장소였던 것이다.

  그런데 승암산의 남쪽으로 어느날인가 성모마리아상이 보이고 순교자터라는 말이 들리더니, 이제는 중바위라는 이름보다는 치명자산이라는 성지순례지로서 더욱 유명해졌는지 각지에서 관광객을 싣고 오는 차들로 항상 울긋불긋해졌다.

  몇십년만에 가 본 그 곳은 많이 가꾸어져서 십자가의 길이니 철쭉이니 그야말로 성지순례지로서 잘 꾸며져 있었다. 신도들이 하나하나 가꾼 것이란다.

  '어떤 천주교신자 부부가 가운데 줄을 그어놓고 평생을 넘어가지 않고 살았대. 그러다가 순교했다네.' 입으로 구전되는 이야기였었다. 

  그런데 지금 그 순교자 가족 7명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이 바로 이 곳이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천주교를 전파하다 순교한 유항검과 아들 종철과 며느리 이순이 등 온 가족이 순교하였단다.

 


  치명자산

 


  바로 아래로 흐르는 전주천


   박태기 나무

  치명자산에 대해 잠깐 소개해 본다.

 

지방 기념물 제68호로 지정돼 있는 치명자산 유항검 일가 합장묘에는 호남의 첫 사도요 순교자였던 유항검과 그의 부인 신희(申喜), 두 아들 유문석·유중성, 제수 이육희의 유해 그리고 동정 부부 순교자 유중철 요한, 이순이 루갈다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이들은 원래 치명한 후 김제군 재남리(현 용지면 남정리)에 가매장됐다가 전동 본당 초대 신부인 보두네 신부를 비롯한 신자들이 1914년 4월 19일에 이곳으로 옯겨 모셨다.

1993년 11월 29일에 이 묘소를 개장, 유해 확인 작업을 벌인 결과, 이 가족 묘소에는 7개의 옹기에 각각 유해가 담겨져 있었으며, 백사발에 인적 사항이 적혀 있었고, 숯을 담은 채 옹기를 막아 놓아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했다.

진주 유씨 소재공파(素齋公派) 8대손인 유항검은 1784년 권일신의 집에서 천주교 교리를 배우고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는 가성직 제도에 의해 신부의 권한을 위임받고 고향인 전주 초남리(현재 전북 완주군 이서면 조남)에 내려와 호남 지역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했다. 유항검은 가성직 제도가 교리에 어긋나며 독성죄가 됨을 깨닫고 이를 시정키 위해 북경 주교에게 문의 편지를 내게 했으며 주문모 신부를 입국시키는 데에도 큰 공을 세웠다.

1801년 신유박해가 터지자 전라도 지방에서 제일 먼저 체포돼 서울로 압송당한 유항검은 대역 부도(大逆不道)죄로 능지 처참형을 받고 전주 감영으로 다시 이송, 1801년 10월 24일 46세의 나이로 참수되었다.

또한 유항검의 부인 신희와 동정 부부로 유명한 유중철(요한)과 며느리 이순이(루갈다), 둘째아들 유문석과 동생 유관검이 순교했다.

이렇게 해서 유항검 일가는 지상의 모든 삶을 영생의 세계로 옮겼고 이들의 하느님께 대한 순종과 믿음의 확신은 일가의 단종을 가져왔다. 조정은 이들의 흔적을 아예 없앨 요량으로 대역 죄인의 집을 헐고 집터를 깊게 파 연못을 만들어 버리는 파가 저택(破家猪宅)의 형을 내렸다.

전주 초남리에서 시작된 유항검 일가의 길고도 먼 여정은 이렇게 치명자산에서 마쳤고 그 길은 시련과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 이제 우리 신앙의 후손들은 생명은 물론 가문의 단절까지도 감수하며 천주를 섬겼고, 그 흘린 피의 대가로 호남 천주교회의 초석을 이루었던 유항검 일가의 고결한 신앙을 구비진 능선을 따라 산을 오르며 되새기는 것이다

 

  원불교 강당에서 49제 할 때 많이 들었던 '마음자리'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행동이 있으니 마음이 바뀌면 인생도 바뀔 수 있다는 말이 되겠지요.

  대부분의 생활양식이고 신앙이었던 불교에서 떠나, 천주교나 기독교로 바뀌니 모든 생활양식 또한 바뀌어서 일요일에 친척집에 가는 것이 부담스럽고 미안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생각도 문화도 하나 둘씩 바뀌어 갑니다.

 

  5월은 가정의 달

 오시는 모든 분들의 가정이 즐겁고 행복한 곳이 되시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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