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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와 이목대

최고선수 2005. 5. 29. 11:16

 

  풍남문에서 동쪽으로  10여미터 정도 가다가 팔달로를 건너면 태조로가 되는데 오른 쪽으로는 전동성당이 왼쪽으로는 경기전이 있다. 10분 정도를 동쪽으로 직진하다보면 전주명품이며 전통문화체험관, 공예품 전시관, 종이문화체험관 등을 지나 자그마한 오른쪽 동산으로 오르면 오목대로 오른다.

 

  오목대에서 50여미터의 다리를 건너면 이목대가 있는데 이 곳에서 태조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대왕 이안사(李安社)가 태어나 살았던 곳으로 이를 기념한 고종의 친필비가 서있다.

전주이씨들은 이안사때까지 이 곳에서 살다가 함경도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오목대는 목조대왕이 자연의 풍광을 즐기며 노닐던 곳으로 목조가 자라면서 이곳에서 호랑이와 싸웠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또한 오목대는 고려 우왕 6년(1380) 이성계가 남원 운봉 황산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돌아가는 길에 이 곳에 들러 종친들과 전승축하잔치를 벌인 곳으로 유명하다.

 

 


  오목대

 


오목대에서 내려다본 한옥마을

 


  다시 내려오면서 전동성당이 보인다.

 


  한옥마을로 들어가서 전주최씨 종가댁 담을 타고 골목으로 들어가면 설예원이 있다.

 

  오목대에서 전주천쪽(남쪽)으로 내려가다보면 한벽루가 있고,

한여름 밤의 전주천변 버드나무 아래 평상에서  매운탕을 먹으며

이열치열 한여름의 더위를 달래기도 하고, 전주천의 시원한 물놀이며 멱감고 빨래하던 추억이 아득하기만 하다.

  치명자 산 아래의 개울이 바로 전주천이다.

  남자들은 물이 조금은 깊은 각시바위 서방바위 애기바위가 있는 치명자 산 쪽으로 목욕을 가고,

  여자들은 한벽루에서 한참을 더 내려와 싸전다리(매곡교)와 남부시장(풍남문 바깥쪽) 근처의 전주천변에서 누런 광목빨래를(옛날 이불호청으로 쓰이고  옷도 지음)삶아서 바래고, 집에서 머리에 이고 온 큰 빨래들을 빠는 여자들로 항상 북적이고, 구수한 입담으로 재미난 이야기와 볼거리를 선사하던 약장사 굿을 하기도 해서 항상 시끌벅적 분주한 곳이었다. 한여름 밤에 더위가 너무 심할 땐 전주천으로 가서 살짝 씻기도 하곤 했었다.

  전주천과 남부시장은 그렇게 장을 보러오기도 하지만, 삶의 터전이자 TV나 인터넷이 없던 시절의 새소식을 전하고 만들고 유통되는 중요한 곳이었다.

  한옥마을을 둘러보다가 문득 변화와 보존의 상반된 개념 속에서 어쩌면 옛것을 지키는 이들에게 우리는 무언가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음은 무슨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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