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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도 건강한 정치가 있어야

최고선수 2014. 10. 4. 08:33

경향신문 2014.10.3금  23


     한의사 강용혁의 -멘털 동의보감-


  정치는 정치인들만의 전유뮬이 아니다. 가정에서도 건강한 정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승자는 승리에 도취되고 패자는 앓아 눕는 정치는 건강하지 못하다. 패자의 그림자는 이내 승자에게도 드리워진다.

  불면증과 만성 복통 설사로 내원한 60대 여성. 마흔 된 아들의 결혼식을 앞둔  즈음 갑자기 시작됐다.  검사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도, 이유없이 불안하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데가 없다. 자식은 "예정된 양가 상견례며 결혼식 날짜까지 다 미뤘다"며 답답하다는 모습이다.

  불편한 마음이 만든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환자는 "신경 쓸 일은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바로 '하나도'라는 과장된 표현에 진짜 원인이 숨어 있다. 무의식이 애써 반대로 더 힘을 준  표인트다.

  몸이 아프기 직전 무엇이 불안했을까. 어렵게 기억해낸 건 결혼식 장소 결정 문제였다. 결혼 당사자들은 직장 근처인 서울에서, 환자는 양가 고향에서 하길 바랐다. 그러나 결론은 너무 일방적이고 싱겁게 나버렸다. '어머닌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였다. 권력의 추는 이미 장성한 자식에게 기운 것이다. 나머지 일정도 척척 진행됐다.

  환자의 심기와 몸이 불편해진 것이 바로 이즈음이다. 외아들의 결혼식은 홀어머니 인생에서도 매우 중요한 방점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스스로 참여하고 결정할 게 아무것도 없다. 마치 남의 집 잔치를 구경하는 처지다.

  자식은 판단력이 더 좋은 자신이 부모의 걱정거리를 줄였다고 여길 수도 있다. 노부모들이 일절 신경쓰지 않도록 하는 게 좋은 봉양이라고 착각한다. 건강과 먹거리는 챙기지만, 집안 대소사 결정엔 가급적 노부모를 배제하려 든다. 그러나 이면에는 소통의 귀찮음과 일방통행의 편리가 존재할 뿐이다.

  노부모 입장에서 이를 과연 '편안한 노후'라고 받아들일까. 아니면 '뒷방 늙은이' 신세의 무력한 삶으로 전락한다는 불안감을 갖게 될까. '이제 죽을 날만 받아놓고 조용히 주는 밥이나 먹다 가야 하나' 싶은 불안감이 커진다. 이는 젊은 부모가 어린 자식에게 밥 먹여주고 학원 보내주면 말 잘 듣고 공부나 잘하라는 식과 닮아 있다. 소통과 참여라는 정치는 실종되고 억압과 배제가 노골화된 장면이다.

  환자 역시 '항상 내 편이던 아들이 이제 달라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심 예비며느리까지 못마땅해 보였고, 결국 '궁합이 안 좋다'며 딴지까지 거니 아들도 머리가 아프다.

  해법은 간단하다. 정치를 하는 것이다. 홀어머니가 원하는 것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당당한 참여다. 이것이 무시 당하자 무의식에서 '몽니'를 부리게 된 것이다. '나도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시위다. 사소한 결정에도 어머니 의견을 묻고,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설득당해야 한다. 당신의 존재가 아직 집안에서 큰 의미가 있음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치료 해법이자 최고의 봉양이다.

  맹자는 "높은 것을 만들 땐 언덕을 , 낮은 것을 만들 땐 반드시 강과 연못을 이용하라. 이것이 지혜로운 정치다."라고 말했다. 노부모의 봉양에도 노인의 불안심리부터 이해하고, 조화롭게 만드는 정치가 필요하다.

                                                           분단 마음자리한의원장

                                                         <닥터K의 마음문제 상담소>저자



부안 마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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