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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를 응시하며 바로서는 힘

최고선수 2014. 12. 6. 15:25

경향신문 2014.11.07.금


   안희정의 내 인생의 책5 -사막의 지혜/토머스 머튼-


          분노를 응시하며 바로 서는 힘

  

   "분노하지 말라"  "겸손해라"  "용서하라". 사막의 현자(賢者)들이 절대 고독 속에서 잉태한 잠언들이다.

  수세기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박해 끝에 4세기 로마제국은 가톨릭을 인정했다.  탄압은 중단되었고, 신자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았다. 하지만 스스로 사막을 찾아 떠난 수도사들이 있었다. 자유를 마다하고 고립을 택했다. 수도사들은 세상의 번잡한 소음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봤고, 진주 같은 지혜를 품었다.

  토머스 머튼수사가 수도사들의 잠언을 엮은 <사막의 지혜>는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찬찬히 짚어본다. 특히 인간을 불행으로 내모는 분노의 본질을 꿰뚫고, 이를 다스릴 방법을 제시한다. 수도사들은 "분노하는 사람은 수도승이 아닙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왜 분노하지 말라고 할까? 그들은 분노의 속성을 잘 알고 있었다. 통제되지 않은 분노는 자신을 태우고, 주변을 황폐하게 만든다. 분을 발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수도사들은 분노의 파괴적 본성을 희망과 사랑이라는 긍정의 에너지로 유도하기 위한 처방을 찾았다. 바로 '겸손'이다. 그들이 말하는 겸손은 단순히 '자신을 낮추는 언행'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욕을 용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 자존심과 자아에 상처를 입히는 누구라도 용서하자고 제안한다. 용서의 마음에 분노는 자리 잡을 틈이 없다.

  도지사 4년차이던 지난해 이 책을 만났다. 도지사 역할 중 상당 부분은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를 마주하는 일이다. 나는 도민들의 슬픔과 분노를 위로해드리고 싶었지만, 그분들의 고통과 노여움이 어느새 나에게 전이되기곤 했다. 깊은 번민 속에 허우적거릴 때가 많았다. 그분들의 아픔을 온전히 살펴드리기 위해선 내 마음속 안식이 필요했다.

  그 갈등의 순간 <사막의 지혜>는 위안과 힘을 주었다. '모욕을 용서하는 것이 겸손'이라는 현자들 말에 세상의 슬픔과 분노를 응시하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내게 잊을 수 없는 책이다.

                                                                                          충남도지사

관촌 사선대


 마곡사


목포 고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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